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결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도중 옐로카드가 15장이나 나올 정도로 양 팀 모두 숨막히는 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스페인에 승리를 안겨주었고, 그 순간 TV에 비친 네덜란드 선수들의 얼굴은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으며, 감독은 시상대에서 걸었던 은메달을 시상대 아래에서 둘둘 말아 주머니에 집어넣기까지 했다. 이긴 팀의 감동과 진 팀의 씁쓸한 모습이 더욱 강하게 표출되고 자국 국민의 희비도 깊게 엇갈린 이유는 양국 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절대주의시대, 지리상의 발견이 한창이던 16세기, 두 나라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의 역사를 썼다. 그러기에 이번 2010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두 나라 국민은 마음속으로 300년 전 두 왕국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를 연상했을 것이다.
1568년 루터파의 나라 네덜란드는 가톨릭의 수호자 펠리페 2세 스페인 국왕에게 반기를 들고 피의 독립전쟁을 시작한다. 당시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스페인에는 쉽게 끝날 것처럼 보이던 전쟁이, 죽음을 불사한 네덜란드인들의 항거에 수십 년이나 지속됐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네덜란드는 드디어 독립을 쟁취한다. 이후 스페인은 유럽에서 군사적 패권을 잃었으며, 이때부터 스페인 왕국의 몰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반면 네덜란드는 해상 강대국으로 성장해 아시아까지 진출했고, 그중 일본을 향하던 헨드리크 하멜 일행이 탄 배가 1653년 우리 땅 제주도에서 난파하여 `하멜 표류기`를 남기게 된다. 그리고 네덜란드와의 인연은 2002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4강으로 이끈 네덜란드 감독 히딩크를 통해 다시 한번 각별한 의미를 남기게 된다. 하지만 역사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스페인과 더 깊은 유래를 지니고 있다. 하멜보다 60년 앞서 1593년 일본에 머물고 있던 스페인의 세스페데스 신부는 유럽인 최초로 한국 땅을 밟는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1년여 동안 진해의 웅천지역에 머물며 4통의 서간문을 써서 한국의 존재를 처음으로 유럽에 알렸다. 1601년 스페인 빌바오에서 출판된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세스페데스 신부의 서간문을 인용해 한국에 대한 첫 기록을 남긴다.
2010년 스페인과 한국은 공식 수교 60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유럽의 명문 축구클럽인 FC 바르셀로나가 8월 4일 방한해 친선경기를 갖는다고 한다.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뜨린 미드필더 이니에스타를 비롯해 사비, 푸욜, 비야 등 쟁쟁한 월드컵 멤버들이 방한할 것으로 보인다. 수백년 역사를 이어 이제는 작은 축구공 하나가 네덜란드와 스페인, 그리고 이들과 우리 사이 가교를 다시 이어주고 있다. 월드컵 경기 자체도 즐거웠지만, 축구공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도 역시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