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성돈]또… ‘제왕적 대통령’의 그림자
[시론/황성돈]또… ‘제왕적 대통령’의 그림자
  • HUFSNEWS
  • 승인 2010.07.30 15: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성돈 행정학과 교수
“한국의 대통령이 부럽습니다. 대통령의 의지와 말 한마디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일본 신당의 리더로서 집권에 성공해 총리 자리에 올랐지만 여러 혁신 노력이 제약에 부닥쳐 고전하던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가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정부조직 개편 등 혁명적인 조치들을 단행한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했던 이야기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보좌진, 내각의 행보를 보면 한국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 서민 챙기기에 방점을 둔 이 대통령이 서민을 상대로 한 대기업 캐피털사의 고율 이자에 대한 부당성과 대기업의 독식 문제를 지적한 후 갑자기 이자가 내려가고, 대기업 불공정행위를 바로잡겠다는 대책이 나오는 등 정책이 급격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관계 부처 장관들이 정책으로 화답하는 것은 그만큼 대통령의 영이 서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징표로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방향 자체가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손놓고 있다가 대통령이 말 한마디 했다고 해서 장관들이 다른 일을 제쳐두고 거기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을 호들갑스럽게 제안하고 추진하는 이른바 ‘정책 쏠림’ 현상은 두 가지 점에서 경계할 일이다.

쏟아지는 ‘대기업 때리기’ 정책

첫째, 대통령이든 총리든 행정부의 수장도 인간이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 없고 사안과 관련된 모든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개인적 선호까지 있어 그들의 판단은 잘못될 수 있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총리에게 조직을 붙여주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에 앞서 관련 조직과 깊은 논의를 거치고 조율을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 부처는 평소 대통령의 정책 의중을 파악하게 되고, 차분하게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과 추진 방식, 그리고 절차를 마련하여 관계 기관 및 당사자와 소통하면서 탄탄하게 정책을 만든 뒤 조용하게 추진한다. 대통령이나 총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처가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만들어 내거나 버리는 ‘눈치보기 냄비식’ 정책과 달리 이렇게 만들어낸 정책은 내용의 질과 효과성, 지속성 면에서 탁월하고 인기영합주의에 빠져들 위험도 적다. 대통령의 일희일비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중요한 정책이라면 평소에 대안을 마련하여 묵묵히 꾸준하게 추진하고, 대통령의 취약한 개인으로서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정책 전통이 한국 관료사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의도 좋아도 시스템적 접근 필요

둘째,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의 정치문화에는 독재에 대한 거의 공포에 가까운 반감이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대통령의 독주로 추진되는 정책은 틀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내용이 아무리 옳더라도 절차가 정의롭지 않은 것으로,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역사를 통해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 선진국일수록 행정부의 수장이 혼자 국정을 좌지우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견제하고 감시한다. 또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이고, 의회는 다양한 가치와 이익이 경쟁하기 때문에 정책 쏠림 현상이 발생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대통령이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 이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여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정에 반영하는 방식은 ‘훈시’ 방식보다는 조직과 시스템을 통한 치밀한 논의와 조율을 통해서여야 한다.

황성돈 한국외국어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