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여파로 경제가 아직 어려운 국면인데도 젊은 학생들의 해외 유학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작년 통계에 의하면 해외유학생은 단기연수생 10만여명과 학위과정 14만4000여명 등 24만여명에 이르며 학위과정 유학생 가운데 7만2638명이 미국에, 1만1437명이 유럽에 유학 중이다. 이는 전년도 대비 약 2만7000명이 늘어난 수치다. 인구 3억명인 미국의 해외유학생이 26만6000명인 것과 비교할 때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미국 유학생 규모는 매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인도, 중국과 함께 3위권에 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외유학생의 특징은 미국과 중국에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4만4000명의 학위과정 유학생 중 북미에 7만2000명, 중국 등 아시아에 5만명이 집중되어 있고 유럽에는 1만1000명만이 유학하고 있다. 적지 않은 유학생이 유럽의 명문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최근 유럽 대학들이 유럽연합(EU) 통합에 발맞추어 제도 혁신과 학문의 질적 향상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해외유학을 준비하는 많은 학생이나 부모들에게 적극적으로 수혜가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 교육당국이 적극 나서기를 바란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국가의 고급 인력 수급에 있어서도 지역 편중을 불식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매년 세계대학의 연구성과 서열을 발표하는 영국 더타임스 지에 의하면 전세계 200대 대학 중 유럽 대학이 82개나 포함되어 세계 대학교육을 견인하고 있다. 유럽은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과거 유럽의 대학들은 서로 다른 학제로 대학 나름의 전통을 고수함으로써 학문적 교류에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으나, 1999년에 유럽 각국은 대학교육 통합을 촉진하고 국제경쟁력을 한층 높이기 위한 ‘볼로냐 프로세스’를 출범시켜 2010년까지 완성토록 했다. 이 제도는 학사, 석사, 박사 3-2-3년제와 학위 국가 인증제를 도입해 국제 경쟁력을 한층 강화시켰으며 현재 비유럽 국가들까지 포함해 4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미국에 비해 저렴한 학비와 생활비로 높은 수준의 학업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프랑스의 국공립 대학에는 아직도 등록금이 없으며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대학 등록금은 연간 1000∼5000유로로 매우 싼 편이며 생활비도 저렴하다. 최근 우리나라 해외유학 경비가 4조원이 넘는다는 조사 보고가 있었음을 볼 때 더 많은 한인 학생들이 유럽으로 유학 목적지를 옮기면 외화를 절약하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지역의 유학 여건이 나쁘지 않음에도 한인 유학생들이 미국, 캐나다에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우리나라에서 계속 그칠 줄 모르는 영어 열풍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대학이 신임 교수들에게 영어 강의를 의무화하고 있고, 일반 기업체에 취업하는 경우에도 영어 구사 능력을 최우선시하는 바람에 영어 이외의 다른 외국어에는 눈 돌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대부분의 국내 대학에서는 미국 유학파들이 교수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미국 중심의 학문체계가 뿌리내리고 있어 타 지역 유학파가 진입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얼마 전 독일에서 정치학박사를 훌륭하게 마치고 귀국한 여교수 한 분이 지방의 해양 관련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면서 유럽대학 학위로 국내 대학에 진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하소연했다.
그러나 최근 유럽 대학들의 질적 성장과 혁신의 모습은 눈부시다. 많은 대학이 생명공학, 우주과학, 나노기술, 환경, 핵융합 등 분야에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끊임없이 배출하고 있고, 많은 수의 강의도 자국어와 더불어 영어로 제공되고 있어 유럽에서 유학하게 되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유럽어뿐만 아니라 영어까지 습득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여러 분야의 유럽 박사학위자들이 가르친다면 우리 대학생들도 세계 학문의 양대 산맥인 미국과 유럽의 지식을 균형되게 접할 수 있어 글로벌 시대를 선도하는 인재 양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임성준 한국외대 교수·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