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글로벌 시대 외교관
[매경의 창] 글로벌 시대 외교관
  • HUFSNEWS
  • 승인 2010.08.2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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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리비아에서 우리 외교관이 추방당하고 선교사가 구금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종교나 이념, 문화적 배경이 다른 수많은 나라와 다양한 관계를 유지하는 지구촌 시대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생길 수 있다. 리비아는 이슬람 국가이며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이러한 이슬람 국가에서 외교활동을 하며 그들과 함께 원활히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아랍어를 구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외교 현실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해당 국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들, 특히 특수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지역에 파견되는 외교관은 가급적이면 해당 지역의 언어를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1970년대 퇴역 장군들을 대사로 파견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G20를 주도하는 국가로서 국제외교의 중추적 역할을 할 만큼 성장했으며, 국내적으로 보더라도 경제ㆍ스포츠ㆍ자원외교 등 갈수록 다양한 분야에서 유능한 외교관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지난 5월 말 `새로운 외교관 선발제도` 시안(試案)을 발표했다. 2012년부터 정부가 `외교아카데미`를 세워 기존의 외교관 선발과 양성 방식에서 전문교육기관을 통해 외교 인재를 수혈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에 따르면 외교아카데미 선발시험에서 영어 능통자는 5%, 제2외국어 특기자는 15%를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에너지ㆍ통상ㆍ환경 등 분야별 전문가를 전체 중 20% 선발하며, 나머지 60%는 별다른 특징 없이 외교관에게 요구되는 기본지식이나 잠재력을 갖춘 인물을 뽑는다고 한다. 결국 전문화된 언어구사능력을 갖춘 인재 선발은 20%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전체 외교관 중 80%는 `외국어를 적당히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 심각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특정 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 인재는 해당 분야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문지식을 갖춰야 한다. 외교 무대에서 언어는 생존 문제에 해당하는 필수적인 무기다. 무기 없이 전쟁에 나가는 군인은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같은 글로벌 시대에 외국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외교관 선발에서는 이에 합당한 인재선발 방식이 필요하다.

물론 외교 분야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통상ㆍ환경ㆍ에너지ㆍ안보 등에 관한 전문지식 역시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제조건은 외국어다. 해당 지식을 언어라는 수단으로 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어에 대한 비중을 낮춰서는 안되며, 어학 능력을 바탕으로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를 뽑아야 한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캐서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의 모습이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도 세계 외교무대를 주도해 나가는 선도국가로서 주재국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그들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미국, 유럽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중앙아시아 등을 누비는 전문외교관이 절실히 필요하다.

역사를 거슬러 보건대 외교관은 세 치 입으로 나라의 운명을 쥐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무한책임을 갖는 최고 엘리트 집단이다. 따라서 외교관은 그 누구보다도 전문가다워야 하고 외교관을 선발하는 제도 역시 그 무엇보다도 전문적이어야 한다. 지난주 행정고시를 일부 폐지한다는 정부의 파격적 정책 발표를 보면서 어렵게 마련한 새로운 외교관 선발제도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