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안성기(70)를 생각하면 굵은 주름 가득한 미소가 떠오른다. 세월을 온전히 받아들인 주름이 만들어낸 표정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빵빵하게 '늙지 않는' 배우들 틈에서 그 주름은 나이테처럼 '배우 안성기'를 증명해주었다. 얼마 전 어색한 가발을 쓰고 부은 듯한 그의 얼굴이 공개되면서 혈액암 투병 사실이 알려졌다. 하회탈 같은 미소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낯선 모습은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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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십대의 반항'으로 그해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소년특별연기상을 받는 등 언론에서는 '천재 아역배우'라고 떠들썩했지만 그는 "연기가 뭔지도 몰랐고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그땐 못 했다"고 했다. 정작 연기에 대한 열정을 키운 것은 영화판 밖에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아역배우의 수명이 다하자 자연히 배역이 없어졌다. 대본 대신 교과서를 잡았지만 기초가 없으니 헤매야 했다. 간신히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들어가서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지만 영화판은 그를 잊은 지 오래였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로 성인 연기를 시작하기까지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백수'로 지냈다. 그는 그때를 "인생의 암흑기인 동시에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그는 "어려움을 겪어봐야 어려운 사람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기는 일시적인 것이다"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공백기의 좌절과 방황이 '인간 안성기'와 '배우 안성기'를 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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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10월 22일자]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3/0000033101?sid=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