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연구소 HK+사업단, 제56회 명사초청특강 개최
인도연구소 HK+사업단, 제56회 명사초청특강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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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2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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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 인도연구소(소장 김찬완)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은 지난 1월 17일(화),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박금표 박사를 초청하여 제56회 명사초청특강을 개최하였다. '시크교 민족주의와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특강에서는 시크교 탄생의 배경, 특징과 생활 규율, 시크교와 무굴제국, 영국 지배 시기 시크교 정체성 확립, 그리고 인도의 독립과 Khalistan 등의 내용이 다뤄졌다.

먼저 시크교의 탄생 배경으로는 수피즘과 힌두교의 박티사상을 근간으로 까비르의 사상과 결합하여 성립하였으며, 창시자는 나낙(Nanak, 1469-1539)으로 종교의 지도자는 구루, 따르는 신자는 시크라고 불리기 때문에 시크교로 불렸다. 시크교는 유일신교로 모든 사람은 신 앞에 평등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남을 배려하고, 공허한 종교 의식은 가치가 없음을 주장하였다. 시크교는 단지 믿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강조한다. 시크교의 영성은 신을 이해하고 체험하여 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해탈은 신의 은총을 통해 얻는다.

시크교는 무굴제국과의 정치적 관계로 인하여 영적이고 명상적인 종교였음에도 불구하고 군사 조직화 된다. 박금표 박사는 무굴제국과 시크교의 역사를 도표를 통해 효과적으로 제시하였다. 시크교는 1대 나낙 이후 인간이 구루였으나, 10대 교주 고빈드 싱 이후 시크교의 경전 그란트 사힙이 상징적 교주가 된다.

다음으로 영국 지배 시기의 시크교의 정체성 확립에 대하여 해설하였다. 이 확립의 과정은 3단계로 나누어, 1단계 싱 사바 운동과 슛디, 2단계 1919년 인도통치법의 시크의 분리 선거권 인정, 3단계는 1925년 구르드와라 제정으로 정리되었다.

마지막으로 시크국가를 만들려는 노력인 칼리스탄 운동은 1984년 황금사원의 시크 학살을 통해 파국을 맞이하였다. 이후 칼리스탄 운동은 인도 내에서는 약화되었으나 캐나다 이민 사회에서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해설하였다.

금번 특강은 효과적인 자료 정리와 간결한 해설로 시크교의 전모를 역사적 순서로, 그리고 현재의 정치적 현안을 중심으로 정리 해설하여 청중의 호평을 받았다.